김선현교수의 트라우마테라피 3 - 헬스앤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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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5. 26.
[김선현의 트라우마 테라피 / 3주차]
남을 위해 내 상처를 숨기고 있지는 않나요?
글 : 김선현교수 / 편집 : 헬스앤라이프 곽은영기자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아들이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것이다”라는 무시무시한 예언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당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를 친부로 알고 자라난 오이디푸스 역시 같은 예언을 듣고, 예언에서 벗어나고자 코린토스를 떠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예언이 실현되고 말지요. 길에서 싸움이 붙어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그것이 친아버지였고, 괴물 스핑크스를 물리쳐 왕으로 추대되면서 결혼하게 된 왕비가 친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 떠돌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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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동양적 사고관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기에 한국이라는 국가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도 더해집니다.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사회생활의 기본 단위를 ‘개인’으로 보느냐 아니면 ‘집단’으로 보느냐에 있다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집단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효에 대한 강조로 우리 사회에는 다른 나라와 크게 구별되는 집단주의 현상이 하나 더 생겨났는데, 바로 내 부모를 비롯한 가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가족주의’입니다.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보다는 ‘우리(we-ness)’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고, ‘내 아빠’가 아니라 ‘우리 아빠’라고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역할도 자신의 성향보다는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정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성향보다는 관계망 내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지요. 원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장남 이니까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역할과 정체성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가족을 위해 원치 않았던 길을 애써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주의적 자아보다 공동체적 자아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어쩌면 한국인 특유의 정서라고 하는 한(恨) 역시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욕구가 좌절되고 인생의 쓴맛을 보았지만 이것을 보복하거나 하소연하는 대신 억누르고, 다른 방식으로 승화시켜 발산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나 좌절된 욕구를 꾹 참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쌓인 부정적 감정들이 오랜 시간 해결되지 못하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우울함이나 불안 등 여러 가지 정신적인 문제에 노출됩니다. 충격이 컸거나 오랜 시간 해결되지 못한 경우에는 당시 상황을 표현하는 것마저 기피하게 됩니다.
그렇게 억눌린 감정을 한으로 남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한 번쯤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을 드러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상처 받은 나의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고, 아팠던 기억을 꺼내보고,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미술치료 사례
김○민(F/21)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카멜레온을 그려 이유를 묻자 자신이 상황과 장소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림을 통해 다양한 성향과 감정을 가진 자신의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